종종 자기가 만들어낸 인생관들이 서로 충돌되는 경우가 있다. 나는 이런 면에서는 이러이러 하게 생각하고, 저런 면에서는 저러저러 하게 생각 하고 있었는데, 이러이러한 사람이 저러저러 할 수 있는건가? 하는 생각, 그러니까, A => B 이고 C => D 인데 B =/=> D 일 수 있다는 말이다. 그럴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순에 빠진다. 그리고는 그걸 합리화 시키기 시작한다. 그러면서 내 자아, 내 성격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가고, 혼란에 빠진다.
정말 나 자신을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? 누군가와 얘기할 때, "그럼 너는 이러이러한가 보네?" 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, "너는 이거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?"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,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?
뛰어난 사상가나 정치인, 철학자는 이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. 그러나, 그것이 제대로 된 대답일까?
,,,
'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, 나는 무엇인가, 사람이란 무엇인가'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것이 사람이 사는 목적이고,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한다. (학문과 공학은 다르다고 하겠다. -_-;;) 이 얘기를 고등학교 시절, 존경할만한 선생님께 듣고서는, 결국, 사람이란 존재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해,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.
저 먼 과거부터, 사람은 이상향을 꿈꿔 왔다. 그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, 질병이 없고 죽음이 없고 불행이 없는 천국이라든가, 엘도라도, 샴발라, 등등, 모순이 없고 완전한 형태의 환경으로 주로 표현되었다. 그 환경을 한번 더 생각 해 보면, 사람의 내면의 모순을 없앨 수 있는 환경을 바랬던게 아닐까.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, 완벽한 환경이 주어져서 인간 자신도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세상.
결국, 이상향은 이상향이다. 인간의 내면을 고찰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, 또는 똑똑하다 불릴만한 식자들의 자살이 많은 이유는, 어쩔 수 없는,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절망감의 표출이 아니었을까. 결국 죽음, 無가 되는 것 외에는 내면의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, 결국 죽음을 택한게 아니었을까.
,,,
나는 범인이라 그런 방식을 택할 용기는 없다.
내 안의 모순을 끌어 안은 채, 내 모순 조차 사랑하고,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, 지금을 살아가겠다. 내가 존재하고 있는 원인이, 바로, 내 내면의 모순이라며, 자위하며.
Posted by 이린



